
DEAR
어떤 꿈에선 사랑이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와 살아서 가고 싶은 곳보다
죽어서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았다.
육호수, 「다나에」 中
ㅤ조금씩 여름이 무르익어 간다는 소식이 피부 끝부터 전해졌다. 한층 더워진 날씨에 투덜거리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겼다. 하지만 대학교 사 학년에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졸업 전시를 위한 영상 제작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연영상창작학부 영상 전공의 이번 졸업 주제는 ‘구원’이었다. 십 분 정도 길이의 짧은 단편영화를 기획해야 한다는 말이야 일 학년 때부터 인이 박히도록 들어온 것이라 놀랍지도 않았으나, 주제에 대해서는 약간의 웅성거림이 생겼다. 어디 노란 장판 소설 아니면 성경에나 등장할 법한 단어라니. 여자애들은 체념한 눈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남자애들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늘 그렇듯 웃고 있는 것은 교수님뿐이었다. 올해도 멋진 작품이 나오길 빕니다. 교수님의 여유로운 한마디에 모두의 함성 같은 야유가 강의실 천장을 울렸다.
ㅤ졸업 전시를 못 내겠다고 아예 졸업할 방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영화를 죽도록 사랑해서 이런 돈 안 되는 과에 성적 맞춰 오기는 했지만 전부 감독이 될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정 안 되겠으면 몇몇씩 조를 이루어 버스를 태워달라고 간곡히 부탁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러게 평소에 인맥 관리 좀 잘해놓을걸, 하는 말이 목에 턱 걸리는 시점이다. 개중에 복수전공을 선택해 영상 찍을 시간이 목에 칼을 들이대도 없는 민혁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찍어놓은 영상을 어떻게든 짜깁기 해 주제에 끼워 맞출 생각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다. 남자애들이 학교 앞 고깃집에 둘러 모여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같은 조 하고 싶은 사람? 말하면 다들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자기 생각을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애들 사이에서 결국 다시 한번 주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ㅤ“아니 근데 주제 완전 구리지 않냐?”
ㅤ“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ㅤ누군가 성경 구절을 읊으며 성호를 긋는 모양새를 취하면 결국 모두가 깔깔 웃었다. 구석 자리에서 목살이나 흡입하고 있던 김정수만 웃지 않았다. 걔는 처음부터 조를 짤 생각이라고는 없는 듯이 손도 들지 않고 생각에 빠진 표정을 한 채 열심히 먹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잘 익은 고기를 소금장에 찍어다 씹고 있는 모습을 빤히 보던 옆자리의 승민이 정수를 쿡 찔렀다. 형은 불만 없어? 그는 그런 것보다는 고기에 더 관심이 있는지 그냥 어깨나 으쓱거렸다. 그러고는 입에 있던 것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ㅤ“넌 사진 전공이면서 여기에 왜 끼었냐?:”
ㅤ“그냥 형이 웬일로 회식 온다길래.”
ㅤ대답하며 승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자기 질문에도 대답하라는 듯이 김정수를 빤히 쳐다봤다. 승민의 시선에 다시 입에 고기를 집어넣으려던 그가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ㅤ“난 온수동에 가보려고.”
ㅤ그 말에 승민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구린 동네를 왜? 김정수는 그냥 씨익 웃었다. 주제랑 잘 어울리잖아. 온수동이라함은 대학교에서 걸어서 이삼십 분 내에 있는 동네였다. 팔구십년대에 지어져 우리보다 살아온 나이가 열에서 스물은 많을 오 층 이하의 빌라들이 차곡차곡 늘어서 있는 곳. 어디에나 간간이 늘어선 교회와 카페를 제외하면 제법 조용했다. 그래서 자취하는 애들도 많고 근처의 온수산업단지 쪽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그것도 다 몇 년 전 이야기다. 지금의 온수동은 재개발 준비가 한창이었다. 김정수가 살았던 빌라 단지는 이미 문이 깨지고 페인트가 아무렇게나 엑스자로 칠해져 있을 테고, 들어가지 말라는 듯이 공사용 천과 철제 기둥으로 입구가 막혀있을 것이었다. 굳이 그런 곳을 찾아가겠다니. 무슨 옛정이 남은 건지 모르겠다는 듯이 승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수는 전력으로 남은 고기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ㅤ회식이 끝나자마자 김정수는 정말로 온수동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아무리 낮이라고 해도 동기끼리 모였는데 술 한잔하지 않고 고기만 집어먹는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내둘렀다. 승민이 일부러 술잔을 건넸는데도 김정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사실 술이 싫은가, 하면 그건 아니고… 그냥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는데 미루고 싶지 않다던가. 고기 냄새가 눅눅히 밴 흰 티셔츠의 냄새를 킁킁 맡아보다가는 이내 그만두고 가방 안에 늘 자리하고 있는 빈티지 캠코더를 꺼내 들었다. 오래된 것이 여실히 눈에 보이는 게 꼭 온수동과 닮아있었다. 내릴 정류장은 그리 멀지도 않았다.
ㅤ김정수는 온수동의 캠코더를 들고 그 재개발 준비 중인, 그래서 여기저기 창과 벽돌이 깨져있는, 집들 사이를 올랐다. 제법 높은 언덕길이었는데 여름 낮인데도 괜히 기분이 스산했다. 하지만 그냥 기분이겠거니, 반올림하면 백팔십이 넘는 키의 남자가 무서울 게 어디 있냐는 자기암시를 몇 번 웅얼거렸다.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캠코더 안에 영상을 담으려는 데 갑작스럽게 기계의 전원이 나갔다. 어라, 이게 왜 이러지. 인상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귀신만큼 무서운 게 캠코더가 망가지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다음에 다시 오기로 마음먹으며 주변을 살피며 내려가는 데 누군가 이 길을 따라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남자가 걸음을 우뚝 멈춘다. 저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본다. 동그란 눈동자에 흔치 않은 소년 같은 잘생긴 얼굴이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가, 어…, 하는 의문형의 음소로 변환된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이름이 스쳤다.
ㅤ“…지석이?”
ㅤ▲
ㅤ먼지 쌓인 본가의 벽장 창고 안에는 잊고 살았던 것들이 많이도 들어있었다. 지석은 자신이 한 번도 맥시멀리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쓰지 않는 것들을 창고 안에 다 처박은 채 잊어버려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제사 한탄했다. 그러니 이 쓸모없는 것들을 전부 다 가져다 버릴 심산이었다. 그래야 맘 편하게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버릴 것들이야 단순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문제집이나 더 이상 쓰지 않는 카세트테이프, 한 때 좋아했던 밴드의 CD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낡은 필름 카메라를 발견한 것은 그 모든 일을 멈추게 했다. 그 카메라에 손을 댄 순간 아주 선명하게 스치는 조각난 기억이 있었다.
ㅤ어깻죽지에 붙은 거대한 두 쌍의 날개. 그것은 분명 천사였다. 나는 그것을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한달음에 뛰어가 아빠의 서재에서 필름 카메라를 몰래 들고 온다. 찰칵. 그러나 동시에 천사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든다. 그럼에도 그는 그 카메라를 자신의 손에 꼭 쥐여준다. 이게 없으면 난 못 돌아가. 다시 만날 때까지 잘 가지고 있어야 해. 자신이 울먹이며 말한다. 그런데 왜 이걸 나한테 줘? 그가 대답하는 목소리가 희미하다. 기억도 거기까지로 흐려진다.
ㅤ어린 시절의 꿈이었는지 아니면 영화의 한 장면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천사의 얼굴은 꼭 흐릿하게 블러가 칠해진 것처럼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석은 그것이 실제라 단연코 믿었다. 그야 자신의 손안에 필름 사진기가 있었고, 그 딱딱한 철제와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된 외형은 명백히 그 천사가 자신의 손에 꼭 쥐여주듯 넘겨주었던 것이었다. 원래도 그는 허무맹랑한 것들을 잘만 믿었다. 외계인의 존재나, 귀신 괴담 같은 것들. 왜. 그런 것들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태생이려니 했다. 그러니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천사를 믿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ㅤ그래서 이걸 돌려주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ㅤ머릿속에 꽂히는 하나의 의문. 카메라를 여기저기 돌려 살펴보면 밑바닥의 철제 부위에 검은색 네임펜으로 6-26이라는 숫자가 휘갈겨 쓰여있다. 지석은 자연스럽게 어릴 때 살았던 온수동을 떠올린다. 온수동 6-26번지. 꼭 퍼즐의 정답이라도 맞춘 사람처럼 손뼉을 쳤다. 하지만 아직도 천사가 거기 살아있을까? 지석이 걱정하는 것이 ‘거기’ 있을까 인지 ‘살아’있을까인지 둘 다 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천사를 찾지 못하면 어쩔지에 대한 생각은 뒤로 미뤄도 괜찮다. 적어도 곤란한 것은 천사이지 지석이 아닐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이십 년이 좀 안 되게 이미 사진기는 방치되어 있었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천사도 제 나름의 법칙을 찾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래도 온수동에 가봐야겠다. 지석은 머릿속에 예전 동네의 모습을 그렸다. 낮은 빌라들 사이를 숨어다니던 그 조용한 동네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믿었다.
ㅤ지석은 창고 짐을 내팽개쳐놓고 목에 오래된 구식 카메라 하나를 달랑 건 채 당장 방을 뛰쳐나간다. 온수동까지는 멀어야 한 시간. 반나절을 빠르게 버릴 수 있는 괜찮은 거리다. 엉망으로 어질러진 집은 꼭 원래 그랬다는 듯,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는다.
ㅤ▲
ㅤ“이거 이미 없어진 주소예요.”
ㅤ“에?”
ㅤ초록색 지도 창에 아무리 옛날 주소를 찍어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더라니. 그러니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그는 상기했어야 했다. 특히나 오래된 동네라면 더더욱 그렇다. 재개발이라는 단어가 무심하게 동네 곳곳에 걸려있고, 혹시나 하고 찾아간 동사무소에서 직원은 사무적이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로 옛날 주소를 찾으시나요? 하고 묻는 데 차마 천사를 찾으러 왔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가 미친놈 취급을 받을 수는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ㅤ“전화번호도 아니고 주소가 없어지기도 하나.”
ㅤ지석은 입술을 우물거리며 꿍얼대듯 이야기하다가 예전 주소가 적힌 지도라도 없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잠시 귀찮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찾으시는 데가 어디라고요? 하고 안경을 들어 올렸다. 온수동 6-26번지요. 직원은 다행히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지역이라며 예전 지도를 내밀었다. 빨간색 모나미 볼펜이 6-26번지 위에 동그랗게 흔적을 남겼다. 직원은 찾기는 쉬워도 길은 스산할 수 있다는 말과 빈집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충고를 덧붙이고는 그 지도를 넘겨주었다. 지석은 머릿속 기억과 지도의 생김을 비교하며 그곳이 어디였는지를 떠올리려고 했다.
ㅤ그때도 온수동은 지석에게 낡고 작은 동네였다. 지어진 지 좀 된 빌라들 사이로 혼자 공을 차거나 비디오 가게에 들러 낡은 디즈니 동산 만화영화를 빌려보기도 했다. 꼭 만화영화가 아니라도 어디 구석에 굴러다니던 비디오라면 뭐가 됐든 한 번쯤 돌려보는 이상한 호기심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천사와 관련된 비디오도 존재했을 것이다. 사거리에는 편의점이 아닌 작은 슈퍼가 있었고, 근처에는 진짜 모래가 깔린 놀이터도 있었다. 그러니까 지석이 옛 기억을 가지고 떠올릴 수 있었던 모습은 그런 오래된 필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온수동 모습은 어떤가. 기억하는 빌라들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채, 재개발을 알리는 듯이 거대한 천을 임시로 덧대놓았고, 아이들은커녕 어른들도 지나다니지 않는 험한 길목이 되었다. 편의점도 슈퍼도 존재하지 않고 그저 붉은 페인트와 깨진 유리 조각이 이곳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음을 알렸다. 지석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어떤 공간은 사람보다 먼저 죽기도 한다.
ㅤ그 꼴을 보고 나니 지석은 발걸음에 힘이 빠졌다. 한순간에 온수동도 천사도 빼앗긴 듯한 이상한 감정이 들어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는데 어디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애꿎은 날씨는 너무나 화창해서 뜨거운 태양이 쨍하니 비췄다. 그 후덥지고 스산한 언덕길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내려오는 남자는 자신처럼 재개발지구를 살피고 있었으며, 손에는 오래된 빈티지 캠코더가 하나 들려있었다. 자신보다 살짝 덩치가 있고 눈매가 뾰족했는데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는지 햇빛에도 머리카락이 반짝이지 않았다. 머리카락 색깔만큼이나 짙은 눈썹을 흘끔 바라보다가, 그런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에 걸음을 우뚝 멈춘다. 제 앞의 남자도 제 걸음이 멈추자, 이쪽을 바라본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가, 어…, 하는 의문형의 음소로 변환된다.
ㅤ“지석이?”
ㅤ그 순간, 그의 이름이 기억났다. 김정수. 아주 어릴 적 온수동에 살던 동안 가장 가까이 지냈던 사람.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뚫고 그의 앳된 얼굴이 기억났는지가 신기했다. 본인의 기억력이 이렇게 좋았는지를 스스로 되물으며 자기도 모르게 뒤통수를 두드렸다. 뜬금없이 길에서 상봉한 둘은 어색하게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ㅤ정수가 먼저 반가운 얼굴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번호 줄 수 있어? 지석은 허둥지둥 열한 자리를 찍어 내밀었고 그가 얼굴을 구겨 웃었다.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 그러게요. 단순한 안부 인사가 오갔고, 정수는 지석을 한참 바라보다가 꼭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지석은 멋모르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
ㅤ○
ㅤ지석은 잘생겼다. 하지만 단순히 잘생긴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김정수의 요지였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씨네마틱하게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항변했다. 그의 동그랗고 반짝이는 커다란 눈과 강아지 같은 검정색 눈동자만으로도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다 도톰한 입술이 동글동글한 반면 콧대와 턱의 하악각이 살아있어 날렵해 보이는 게 동시에 있을 수 있는 일이냐는 거다. 그렇게 어른과 소년의 중간에 있으면서도 잘생긴 얼굴을 찾는 일이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승민은 그의 끝이 없는 외모에 대한 찬사의 말에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하는 것은, 결국 지석을 배우 삼아 졸업 작품을 찍고 싶어서였다. 정수는 애달은 사람처럼 동동거리며 이 모든 이야기를 승민에게 했다. 깊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부여잡는 꼬라지를 보고 승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ㅤ“어떡하지.”
ㅤ“뭘 어떡해. 밥이라도 먹자고 해보든가.”
ㅤ그 말에 김정수는 휴대전화 노란색 카카오톡 창 화면을 한없이 꼬라보기 시작했다. 뭐라고 보내야 어색하지 않을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지석아 오랜만에 밥이나 먹을래?] 열세 글자를 쳐서 보내는데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여 못내 삼십 분은 걸린 것 같았다. 그러고도 1이 사라지지 않는지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다가 십 분쯤 지나서 대뜸 승민에게 뭘 먹으면 좋을까, 하고 물었다. 승민은 그 꼴이 우습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해탈한 사람처럼 허허 웃었다.
ㅤ“웃지만 말고, 뭘 먹어야 좋을까. ”
ㅤ“소고기.”
ㅤ“왜?”
ㅤ“돼지고기까지는 호의 소고기부터는 사심. 몰라?”
ㅤ귀찮은 마음에 반쯤 장난을 섞어다 내뱉은 말을 정수는 진심으로 들었는지 제법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이 진짜 얼굴에 그렇게 쉽게 혹하는 사람이 아닌데 싶어서 그 낯짝이 어땠길래 저런지가 좀 궁금하긴 했다. 그가 그놈의 지석씨를 배우 만들기에 성공한다면 곧 보게 될 얼굴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못한다면 그건 또 아주 상관없어졌다는 뜻이니 괜찮을 것이고…. 팔짱을 낀 채 정수의 표정이나 살폈다. 곧 김정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여간에 표정으로 다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ㅤ▲
ㅤ혹시 사이비 아니야?
ㅤ대뜸 소고기를 사주겠다는 김정수에 대한 곽지석의 반응은 이랬다. 애초에 몇 년 만인지 손가락을 접어 세기도 어려운 시간이 지났다. 그 형이 땅 파면 돈이 나오는 사람도 아닐 텐데 굳이 길에서 어쩌다 만난 자신에게 비싼 밥을 먹자고, 그것도 자기가 사겠다고 말하는 건 제법 이상한 일에 속했다. 적어도 대학생 곽지석 입장에서는 간단한 밥 먹고 더치페이하는 쪽이 훨씬 부담 없고 편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밥을 먹자고 약속했으니 나가긴 해야 했다. 소고기 사준다는 사람을 바람맞히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않은가. 절대로 소고기가 탐이 나는 건 아니었다. 곽지석은 몇 년 만에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로 차려입는 흉내라도 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학교 가는 차림으로 청바지에 검은색 그린데이 티셔츠나 걸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ㅤ약속 장소에는 슬랙스에 면티와 단정한 스트라이프 무늬가 들어간 반팔 셔츠를 걸친 김정수가 서 있었다. 남의 옷차림을 그렇게 유심히 보는 편은 아니었으나 제법 꾸민 태가 나서 저도 모르게 한번 훑어보게 됐다. 꾸벅 인사를 하면 김정수의 낯이 살짝 밝아진다. 별다른 대화 대신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메뉴판과 기본 반찬이 서빙되어 나온다. 꽤나 타격감 있는 금액대에 지석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ㅤ“뭐 먹을래?”
ㅤ“시켜주시는 대로요.”
ㅤ자기도 모르게 극존칭으로 대답하면 정수는 대충 보더니 세트 메뉴를 하나 주문한다. 햄버거집도 아닌데 세트 메뉴가 있네, 같은 맥 빠지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곽지석과는 다르게 김정수의 얼굴엔 긴장한 감이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십 년도 넘게 못 본 사람을 데려다가 소고기를 먹이나. 지석은 괜히 어색해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깔짝거린다. 사이다 한 병이 먼저 서빙되어 병따개와 함께 앞에 놓인다. 술은 좀 그렇지? 하고 묻는 정수에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ㅤ고기는 금방 서빙되고 직원이 그걸 불판에 놓고 굽는 걸 보고만 있다. 도합 여섯 개의 눈이 모두 고기에만 집중되어 있다. 불판 위에서 갈색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소의 어떤 부위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그저 어색하게 눈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이어서다. 한참을 불판 앞에 서 있던 직원이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면 느리게 젓가락을 든다. 먹는 일을 마치고 나면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만 짓게 될 것 같았다. 지석이 먼저 고기 한 점을 집어다가 입에 넣는데 정수가 눈을 굴리며 이렇게 말한다.
ㅤ“너 진짜 잘생긴 거 알아?”
ㅤ지석은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한 채 고기로 뻗은 젓가락 든 손을 주춤거렸다. 입안에 무언가 있었다면 사레가 들렸을 게 뻔한 말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넘기기 위해 일단 고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면 정수도 느리게 고기 몇 점을 집어다가 양념장에 콕 찍어 제 입안에 넣는다. 먹을 게 앞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생전 처음 했다. 그리고 답할 말을 생각하는데, 앞에 앉은 김정수의 귓가가 빨갛게 익어있음을 보았다 대체 왜? 설마 이 형 게이였나. 사이비가 아니라 게이라고 하면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하다. 적어도 에둘러 거절할 여지가 있는 거니까. 지석이 그런 생각들 사이에서 한참을 대답 않고 있으면 그새 꿀꺽 삼켜 입안을 비운 정수가 묻는다.
ㅤ“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ㅤ“뭔데요?”
ㅤ“… 내 영화에 배우로 출연해 줄래?”
ㅤ지석은 이번엔 사이다를 마시려다가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다. 예? 영화요? 무슨 첫사랑한테 고백이라도 하는 듯이 얼굴까지 새빨개진 사람이 뾰족한 눈을 어떻게든 동그랗게 뜨고서 저를 빤히 바라본다. 뭔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고양이 같은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안 될까?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이걸 지금 캐물어도 되는 분위기일까? 애초에 이게 사이비가 아니라는 확증도 없으며 이 형이 게이라면 미리 선을 긋는 게 맞다. 모든 외적인 요소가 커다랗게 빨간불을 외치고 있는데 이상하게 한편으로 궁금했다. 그냥 사람에 대한 괜한 호기심이 일어난 건지도 모른다. 지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ㅤ“…무슨 영화인데요?”
ㅤ“그게, 내가 졸업 작품으로 낼 영화인데 온수동에서 찍을 거야. 우리 이번 주제가 구원이거든? 그래서 이 재개발 구역을 돌아보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분위기를 낼 거고, 그 과정에서 이 동네가 부서지고 새로 지어지는 것만이 구원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생각 중이었거든. 그래서 네가 진짜 딱이야.”
ㅤ한마디를 떼자마자 배로 긴 문장이 꼭 준비한 것처럼 숨 쉴 시간도 없이 김정수의 입에서 줄줄 튀어나왔다. 여태까지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 같아서 다소 헛웃음이 살짝 났다. 정수가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잘 구워진 소고기를 몇 점 더 집어먹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금방 배가 부를 것 같았다. 그리고 배가 부르니까 정수를 만나던 날 찾아 헤매던 천사에 대한 생각이 났다. 온수동 6-26번지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스물스물 올라왔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김정수의 말을 거기에서 끊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ㅤ“형, 형은 천사 믿어요?”
ㅤ“… 어?”
ㅤ지석의 물음에 정수는 벙찐 표정이 되었다. 꼭 어떤 단어를 듣지 못한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지석의 말에 집중하는 얼굴을 하기에 지석은 다시 천사, 라고 또박또박 이야기해야 했다. 그런다고 그의 표정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석은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이었다.
ㅤ“저는 본 적 있거든요, 천사. 그거 찾는 거 도와주면. 저도 영화 찍을게요.”
ㅤ김정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는 그게 뭔데, 하고 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지석은 정수를 사이비라고 의심했던 것과 별개로 자기가 더 사이비 같은 말을 내뱉고 있음을 뒤늦게 인지한다. 하지만 원래 더 간절한 사람이 을일 뿐이다. 결국 김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대학교 졸업 학년은 원래 그런 것이었고, 그가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사실에 미쳐있는 게 틀림없노라고 곽지석은 생각했다.
ㅤ“그래,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와줄게.”
ㅤ○
ㅤ김정수는 집으로 돌아와 곽지석에게 열심히 적었던 대본을 보내고, 몇 년에 걸쳐 이제는 손에 익다 못해 닳아버린, 오래된 캠코더를 챙긴다. 고작 두 명이서 영상을 찍는다는 건 꽤나 고된 일이 될 것이 뻔했으나, 그래서 이상하게 더 설렜다. 대단한 장비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낡은 영상의 느낌을 내고 싶었다. 꼭 과거 어린 시절 어느 날의 기억을 담는 것 같은 모양을 그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중에 이상하리만치 현실감 없이 소년스러운 지석의 얼굴이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ㅤ그리고 문득 지석의 말을 생각한다. 무언가를 함께 찾아달라고 했는데, 그 무엇이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노이즈가 낀 음성은 꼭 존재하지 않는, 들리지 않아야 하는 단어처럼만 느껴졌고 그래서 등줄기를 타고 이상한 소름이 돋았었다.
ㅤ그건 대체 뭐였을까.
ㅤ아무리 고민해도 알 수 없으므로 더더욱 깊이 고민하게 된다. 청력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것은 그인가 자신인가. 괜히 손으로 귓가를 문질러본다.
ㅤ▲
ㅤ지석은 자신의 방 침대에 걸터앉아 카카오톡으로 날아온 대본 파일을 열어 꼼꼼히 살폈다. 김정수는 자신에게 살가운 이모티콘을 써가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함께 남겼다. 지석은 다소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나오는 방어적인 태도였다. 그가 보낸 대본 파일을 열면 아주 고심하면서 적혔겠으나 다소 서투른 거친 문장들이 괜히 눈에 뜨였다. 문장마다 과거의 동네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동시에 자신의 몫으로 남겨둔 듯 몇 개의 질문 밑으로 비어 있는 답변란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신경이 쓰였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해도 좋은 사람인지, 그가 생각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물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수가 넘겨준 대본의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ㅤ온수동에서 당신이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ㅤ적어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유일하고 확실했다. 천사.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렇게 대답해도 괜찮은가? 김정수에게 물으면 또 예의 그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할 것 같아서 물을 수 없었다. 그가 말한 구원이라는 주제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지도 않으니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와 온수동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은 사흘 뒤. 그때까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ㅤ사흘은 정말로 눈 깜짝할 새 흘렀다. 그 사이에는 온수동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알바 도중에 넋을 놓고 있는 일이 한두 번쯤 있었고 덕분에 컵을 몇 개 깨 먹어 급여에서 까이기도 했다. 대본이 종이였다면 닳도록 읽었으리라 자부할 수 있으나, 그뿐이었다. 김정수가 찍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인간 곽지석은 연기에 이응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다소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와 만나기로 한 칠 호선 역사 내로 향하면 그가 캠코더를 만지며 앉아 있었다. 형. 지석이 어색하게 그를 부른다. 정수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들었다가 지석과 눈을 마주치고 이내 사르르 녹아내리듯 웃는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온수동으로 향하는 길에 둘은 서로 말이 없다. 계절은 여름. 삼 번 출구를 따라 역사를 빠져나오면 눅눅한 습기가 팔뚝에 자꾸만 달라붙어 왔다.
ㅤ그런 길을 걸으며 지석은 과거의 정수를 떠올린다. 침묵을 깨고 어떤 주제라도 그에게 툭 던져보려는 심산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기억이 무르고 흐릿하게 느껴진다. 한여름 아지랑이 이는 도로 위를 걷는 이상한 기분이다. 분명 그를 오래전에 알았는데 그 이전의 기억이 새하얗고 불투명하다. 꼭 기억하지 않아야하는 것을 떠올리려는 사람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릿속에서 어린 그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아니, 그다지 어리지도 않은가? 앞서 걷는 그의 뒷모습에 기억 속 그의 모습이 덧씌워진다. 오래된 영화를 틀어놓은 작은 다락방에서 우리는 자주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언제부터 그러지 않게 되었지? 지석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는다. 놀란 정수가 뒤를 돌아본다. 치밀어오르는 기억들 때문인지 몸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ㅤ“괜찮아? 병원 갈래?”
ㅤ지석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정수가 그 앞에 몸을 수그려 지석을 업었다. 지석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날갯죽지를 더듬었다. 뭉툭한 날개뼈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서 더 이질적이었다. 왜? 그에게 날개라도 달려있어야 할까? 자기도 모르게 든 생각에 눈을 느리게 깜박인다. 어쩌면 천사에 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온수동과 현재의 온수동이 불투명한 레이어로 겹쳐져보이는 것 같다. 정수의 뒷목에 얼굴을 박았다. 코끝에서 뜨거운 여름 냄새와 그의 살냄새가 났다. 정신은 까무룩 암전된다.
ㅤ눈을 뜬 건 동네 병원에서였다. 노란색 수액이 팔에 꽂힌 채 방울방울 흐르고 있었고 김정수는 곁에 앉아 울기라도 한 듯이 핼쑥한 낯이 되어 있었다. 의사는 열사병인 것 같다는 투로 이야기했으나 지석은 믿지 않았다. 옆에 앉아 더웠으면 말을 하지, 하고 울먹이는 정수가 신경 쓰였을 뿐이다. 침대에 누워 정수에게 묻는다.
ㅤ“형, 형은 나랑 언제 만났는지 기억나요?”
ㅤ“너랑…”
ㅤ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던 정수는 생각이 멈춘 듯이 눈만 깜박인다. 누가 봐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의 행동이어서 지석은 헛하게 웃었다. 한 번 깨져버린 불투명한 기억이 조각조각 머릿속을 휘젓는다. 기억 속의 김정수와 현실의 김정수는 다르지 않다. 다시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잠재우기 위해 느리게 눈을 감았다. 감은 눈을 뜨지 않고 이야기했다.
ㅤ“분명히 우리는 천사 이야기를 했어요.”
ㅤ“…”
ㅤ“영화는 언제 다시 찍을까.”
ㅤ조금 짧아진 지석의 말에 김정수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대답한다. 내가 다시 연락할게. 지석은 그 말을 오늘은 그만 쉬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쥔다. 그는 피하지 않지만, 손을 맞잡지도 않는다. 그걸로 족했다. 지석이 몸에 힘을 풀면 이번에는 가벼운 잠에 든다. 수마로 내려가는 의식 중에 당신이 내 손을 맞잡는 것이 느껴진다. 그제야 왼손과 오른손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ㅤ꿈속에는 아주 어린 자신과 어떤 여자, 그리고 흰색 날개를 단 소년이 있다. 멀리에는 여자는 난간에 앉아 자신을 안은 채 아주 느린 박자로 노래를 부른다. Fly me to the moon, Let me play among the stars…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중력이 여자의 발목을 잡아채 당긴다. 나는 날개 단 소년의 손을 잡는다. 아니 그가 내 손을 낚아챘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름다운 종류의 괴물을 천사라 부르기로 합의했다는 어떤 시구가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천사였을지도 모른다. 꿈이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장담하건대, 이것은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기억이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ㅤ○
ㅤ분명히 우리는 ( ) 이야기를 했어요.
ㅤ김정수 성격상 쓰러졌다가 다시 잠든 지석을 그냥 거기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 그의 말에 대해 고민했다. 빈칸을 채워 답을 내야 채점이 되는 시험지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손안에 들어찬 온기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기억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흐릿하고 불투명해서 안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나? 정수는 기억들 사이를 마구 헤집는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해 내려 해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만이 온몸을 감쌌다. 어떤 기억도 처음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와 있었던 시간이 과거의 전부인 것 같이 느껴지는 동시에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문득 두려워졌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왜 너는 그런 이야기를 할까. 그게 중요한 일일까? 적어도 한참 만에 우연처럼 만나 알아본 우리가, 우리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ㅤ지석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서야 깨어났다. 무슨 꿈이라도 꿨는지 영 불안한 얼굴을 하고 병원을 나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어차피 그를 집까지 데려다 줄 심산이었으므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온수동 근방에서 한 시간이 족히 걸리는 거리 내내, 버스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시 내려 걸어가는 시간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손을 놓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이상한 두려움이 컸다. 한여름이라 손안에 땀이 찼으나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석의 집은 언덕길 위에 있었고, 볕은 한풀 꺾였음에도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제야 김정수는 정신이 든 것처럼 물었다.
ㅤ“나, 너희 집까지 가도 괜찮아?”
ㅤ지석은 말없이 손을 꽉 힘주어 쥐었다. 꼭 당연히 곁에 있어야 할 것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묻는 저의를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입술이 느리게 버끔거리다가 대답한다.
ㅤ“나랑 있어 줘.”
ㅤ그의 투명한 언어 앞에는 어떤 간절한 수식어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하루만은’ 라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은 수식어. 정수는 왔던 길을 문득 되돌아본다. 오늘을 지석에게 할애한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졸업 영화도 안 찍고 돌아다니냐는 승민의 호된 잔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으나 그뿐이었다. 당장 눈앞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걸음걸음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이상한 데자뷰가 느껴졌다. 차마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으나, 그는 그것을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ㅤ그렇게 도착한 지석의 집은 엉망이다. 작은 집은 꼭 폭탄이라도 맞은 것 같다는 수식어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살림들에서 알 수 없는 화와 폭력의 흔적이 여실했다. 지석은 그게 이상하지도 않은지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제 방으로 정수를 데리고 들어간다. 김정수는 벙찐 얼굴로 손이 잡힌 채 그를 따라간다. 집으로 들어온 지석의 얼굴이 한층 가라앉아있음을 못내 느낄 수 있었다. 놀란 그를 알아차렸는지 뒤늦게 지석이 입을 열었다.
ㅤ“가끔 그래.”
ㅤ“가끔?”
ㅤ“아빠는 술을 마시면 아직도 수민 씨 생각이 난다더라.”
ㅤ정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석을 빤히 본다. 지석은 익숙하게 제 침대에 걸터앉고, 정수는 자연스럽게 그의 앞에 선 꼴이 된다. 그가 잡고 있던 정수의 손을 끌어당겨 제 왼쪽 뺨 위에 올려놓고 낮게 웃는다.
ㅤ“수민 씨는 내가 어릴 때 자살했는데,”
ㅤ“…”
ㅤ“난 그 여자를 닮았거든.”
ㅤ“아.”
ㅤ그의 눈동자가 빤히, 가만히, 정수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정수는 그런 눈동자를 오래전에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지석이 아무렇지 않게 팔을 끌어당긴다. 정수는 맥없이 그저 당기는 대로 당겨진다. 입술이 느리게 붙었다가 떨어진다. 당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ㅤ▲
ㅤ수민 씨는 내가 여섯 살 때 눈앞에서 자살했다. 수민은 내 엄마의 이름이다. 내가 그녀를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까닭은 한순간도 그녀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시간 내내 나를 사랑한 것은 그녀가 아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다른 사람이 봤다고 해도 그걸 천사라고 불렀을까? 모를 일이다.
ㅤ나는 누군가 나를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에 대해 아주 기민하게 반응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우울증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수민 씨는 절대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었다는 게 우리 관계의 가장 큰 문제였음이 틀림없다. 그녀는 내리막길에서 유모차를 제대로 잡지 않거나 어린 나를 오랫동안 혼자 방치해두는 방식으로 무자각의 은밀한 살인을 꿈꾸었으나 모든 방법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살아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수민이 운이 나쁘고 내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어떤 존재의 도움이었음은 나만이 아는 사실이다. 날개가 달린 그것은 늘 수민과 나의 주변을 맴돌았으나 수민은 그것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했다. 나는 그것을 선명히 보고 들었으므로 간혹 수민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관계는 거기에서 더 어그러졌는지도 모르겠다.
ㅤ그때 그녀가 왜 죽기로 마음먹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너무 어렸고 무지했으며 고작 다섯 살 언저리의 엄마가 주는 사랑이 모자라 늘 칭얼대는 아이였을 뿐이다. 그녀는 왜 그때서야 필연처럼 죽지 않는 나와 함께 죽고자 했을까. 내가 너무 미웠거나 그녀가 너무 지쳤거나, 혹은 둘 다일 수도 있겠다.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옥상 난간 위에 섰을 때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고 그것은 아주 불안한 얼굴로 그녀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하늘로 손을 뻗는 나를 수민은 다독였다. 괜찮아, 다 끝날 거야. 괜찮아.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중얼거림을 외치는 데 저 아래 땅은 멀고 사람들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누군가 경찰에 신고라도 한 듯이 사이렌 소리가 울렸으나 수민은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어디에도 아빠의 목소리는 없었다. 사건은 수민이 뛰어내리는 순간 발생한다.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던 그것이 나의 손을 낚아채고, 나는 그대로 들려 옥상 난간 안으로 밀려나듯 넘어진다. 수민은 추락한다. 아래에서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무릎이 까졌지만 울지 않는다. 항상 바라보기만 하던 천사와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ㅤ수민은 바람처럼 즉사했다. 꼭 그 순간을 기다린 사람처럼.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수군대며 말한다. 내가 날아서 옥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은 말한다. 처음부터 그녀의 품에 내가 없었다고. 혹은 그녀에게 내가 안겨있었으나 내가 그녀를 밀었다고. 가지각색의 증언 중에 무엇이 맞는 말이냐는 듯 아빠는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나는 함묵한 채 날개 달린 존재를 보았다. 그것은 아주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말했듯이 나는 애정에 기민한 아이였고, 그것이 오로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ㅤ그런 소문들을 무시하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을 회피하려 술을 마시며 우는 아빠를 피하기 위해, 나는 다락방에서 날개가 달린 존재가 나오는 비디오테이프를 즐겨봤다. 나는 그것의 무릎에 누웠고 그것은 테이프를 보는 내내 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그 테이프는 오래된 흑백 영화였는데 의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가지를 이해했는데 하나는 어떤 사랑에는 입맞춤이 따른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 안에 나오는 날개 달린 것을 ‘천사’라고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천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천사. 그렇게 부르면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나를 끌어안았고, 나는 그것의 입술에 입 맞췄다. 그의 날개에서 나는 부드럽고 산뜻한 바람 향이 간지러웠다.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그 비디오테이프처럼, 사진이나 영화처럼. 아빠의 사진기를 몰래 가져온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절대로 천사를 곤란하게 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ㅤ찰칵.
ㅤ그의 뒷모습을 찍었을 때 돌아보는 그의 표정이 역력히 당황이었음을 기억한다. 필름 안에는 뭐가 담겼을까. 검은색 플라스틱의 사진기에는. 사진기에서 눈을 떼었을 때 사라져 버린 그의 날개와 그럼에도 나에게 카메라를 쥐여주던 당신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ㅤ“이게 없으면 난 못 돌아가”
ㅤ“근데 이걸 왜 나한테 줘?”
ㅤ더 이상 날개가 없는 천사는 웃는다. 웃다가 그렇게 말한다.
ㅤ“이래야 너랑 더 오래 함께일 수 있을 것 같아서.”
ㅤ○
ㅤ지석의 이해할 수 없는 입맞춤 뒤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수민 씨와 이름 모를 존재에 대해서 늘어놓았고 그것이 나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때에는 나의 어깻죽지에 분명 날개가 붙어있었노라고 이야기하며 내 손에 필름 카메라를 쥐여주었다. 밑면에 검은색 펜으로 6-26이 적혀있는 검은색 카메라를. 그가 하는 말이 모두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ㅤ“이걸 왜 나한테 줘?”
ㅤ“형이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어서”
ㅤ말하는 그의 눈동자가 깊고 검어서 나는 말문이 막힌다. 카메라를 양손으로 쥐고 내려다본다. 어쩌면 그 이후로 카메라의 뒤쪽 뚜껑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하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안에 들어있을 사진과 그 속의 존재를.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석이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쥔다. 그가 불안한 얼굴을 한 채 묻는다. 어디 가? 네 말 확인하러.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놓는다. 나는 온 길을 거슬러 돌아간다. 지석의 방을 나서, 엉망인 거실을 지나, 해가 지는 거리로 나선다. 때마침 휴대전화가 울린다. 승민이다.
ㅤ“형 뭐해?”
ㅤ“승민아, 나 부탁할 게 있어.”
ㅤ부탁할 게 있다는 말에 그가 잠시 아무 말을 않는다. 해가 내리깔린 거리는 금방 어두워진다. 들리지 않는 단어와 지석이 말한 이상한 이야기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과거에 대해 그에게 말하면 내가 미쳤다고 할까? 아니면 그냥 한숨이나 내쉬며 일단 자고 일어나라고 할까? 승민과의 처음을 생각하려고 해본다. 역시나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조용하고 다정히 늘 곁에 있었던 것 같다. 부탁할 게 있다는 말에 승민은 여전히 답이 없다. 침묵이 두렵게 느껴지는 건 아주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승민아? 되물으면 뒤이어 한숨 소리가 들린다.
ㅤ“일단 얼굴 좀 보자, 집으로 와.”
ㅤ“사진 현상 좀 해줘.”
ㅤ“….”
ㅤ그의 말이 무겁게 내리깔렸고 지금이 아니면 부탁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급하게 말을 이어 붙였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공기 중에 퍼지는 수많은 소음 사이로 휴대전화 너머의 정적만이 선명했다. 승민은 오래 생각하는 듯하더니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답했다. 알았어. 정수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잘못된 건 없다는 기대를 내심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ㅤ집으로 가는 길은 분명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짧게 느껴졌다. 꼭 자신의 시간만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내내 손안에 쥐인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지석과의 대화를 곱씹다가, 붙었다 떨어진 입술을 매만져보았고 자신의 기억 속을 수없이 헤집었다. 그러고 있으면 해가 다 떨어져 가로등이 줄지어 켜진 도로를 건너 진작 왔어야 할 종착지에 다다른다. 없는 정신을 챙겨 하차 벨을 누르고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에서 내리면 정류장에는 익숙한 머리통이 있다. 다리를 달달 떨고 앉아 있는 오승민이다. 승민아. 그를 부르면 그가 고개를 들고 시선을 마주친다. 눈에 띄게 불안한 얼굴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 손목을 붙잡는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제 손에 들린 사진기를 낚아챈다.
ㅤ“형은 다 알고 싶어?”
ㅤ그의 알 수 없는 질문에 입술이 다물린다. 아는 건 과연 힘일까 아니면 독일까. 눈을 느리게 깜박이다가 못내 바람 빠지듯 웃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구나.
ㅤ“난 알고 싶어.”
ㅤ“왜?”
ㅤ“그러게, 왤까.”
ㅤ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검은색 사진기를 내려다보았다. 그 아래에 적힌 6-26이라는 숫자가 번지수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어쩌면 완전히 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감추어 놓은 건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는 단어, 기억나지 않는 과거, 그리고 곽지석과 오승민. 김정수는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중얼거렸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거지.
ㅤ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많지 않은 대화가 이어졌다. 어쨌거나 오승민은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승민은 카메라 필름을 열기 위해 세 평짜리 작은 암실로 들어갔고, 김정수는 그 앞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서성였다. 승민이 그 암실에서 나오기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면 김정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승민은 현상된 사진 뭉치에서 마지막 한 장을 그의 손에 건네주었다.
ㅤ“동이 틀 때까지 시간을 줄게.”
ㅤ말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무거웠다. 그 말에 어떤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그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정돈되지 않은 빛바랜 노란색 머리카락을 한 채 날개를 달고 있는 김정수가 사진 속에 있다. 날개 죽지가 아리듯 간질거렸다. 꼭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자라날 것 같았고 귓가가 웅웅거렸다. 승민아. 이름을 부르려는 데 말이 헛돌았다. 그는 이미 눈앞에 없고 사방으로 사진들이 바닥에 널부러져있다. 기억이 유리 파편처럼 하나씩 머릿속으로 아프게 꽂힌다. 그러니까 김정수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였다. 사진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집 밖으로 뛰어 나선다.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의 목적지는 뻔하다. 천사가 돌아가야 하는 곳. 온수동 6-26번지.
ㅤ▲
ㅤ가끔 어떤 사람의 마지막 뒷모습이 기억날 때가 있다. 살다 보면 누군가와 헤어지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아주 일상적이라서 그 순간에는 깨닫지 못하지만, 미래의 어느 날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 하고 이상한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미 멀어져 버렸지만, 한때는 각별했던 친구와의 마지막 약속이었던 짧은 점심식사라거나, 함께 조별 과제를 마친 동기와 뒤풀이 후의 취한 채 비틀거리는 웃는 얼굴 따위를 곽지석은 너무 선명히 기억할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천사와의 기억은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 잊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했고 자신에게 뒤돌아서 집 문밖으로 나아가는 김정수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끝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신을 침잠시키려는 듯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지석은, 김정수의 행방을 모른다. 그는 천사가 있으니, 신도 있을 것이라 믿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처음 천사를 찾으려던 곳으로 하염없이 걷는다. 빨간색 모나미 볼펜으로 동그라미 그려진 지도도 없이 발걸음은 쉽게 그곳으로 향한다. 천사를 찾으러 가던 곳.
ㅤ여름이라도 밤은 어둡다. 특히나 재개발 지구의 여름밤은 공포영화처럼 습하고 스산하다. 운명처럼 김정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로등 조명이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를 비추고 있었고 멀리서 보아도 그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천사. 천사다. 곽지석은 확언할 수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그의 몸만큼이나 거대한 흰색 날개 한 쌍이 깃털을 부풀리고 있었으므로. 지석은 그를 놓치고 싶지 않으므로 달린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가 몸을 돌려 자신을 본다. 흰 낯이 서럽게 울고 있다. 아는 건 힘일까, 아님 독일까. 지석의 입술이 달싹거리다가 다물린다. 그의 앞까지 뛰어와서야 숨을 헉헉 내쉬며 멈춰 섰다. 김정수가 입술을 버끔거린다.
ㅤ“전부 기억이 났어.”
ㅤ곽지석이 무엇이, 하고 묻기도 전에 그는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 낮게 깔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고 김정수의 모습은 어느 날 먼 기억 속의 천사와 다르지 않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잊고 있었는데 떠올린 순간부터 무너지는 기분이 드는 것을 막지 못한다. 다급하게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쥔다. 해야 하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ㅤ“가지 마.”
ㅤ우는 얼굴의 김정수가 떨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다.
ㅤ“안녕, 나의 사랑하는 ….”
ㅤ●
ㅤ승민은 시계를 본다. 이제 김정수가 모든 걸 깨달아 날개를 되찾았으니, 동이 트면 그를 천계로 돌려보내야 한다. 과연 김정수가 무엇을 깨달았을지, 사랑을 뉘우쳤을지는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퍽 성가신 일이었다. 본디 천사의 영혼은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큰 죄를 지어 타락한 천사는 어떤 형벌을 받는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온 세상 만물의 삶을 수없이 겪어 그 영혼을 정화하는 것만이 그들이 줄 수 있는 최악의 형벌이었다. 본디 천사의 존재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음에도 자신은 그저 하찮은 미물이라 믿고 끝없는 생애를 반복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조물주의 악취미라고 여겼다. 미카엘이 몇 번의 환생을 했는지를 세는 것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그렇다면 어떤 천사를 타락한 것으로 치부하는가.
ㅤ영생을 사는 천사의 시간으로도 아주 먼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태초에 에덴이 사라지고 난 후, 카인과 아벨이 있었다. 당신이 알지도 모르는 어떤 첫 번째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ㅤ카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께 제물로 바치고 아우인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리자, 주께서 카인의 제물은 반기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반기셨다. 카인은 그에 몹시 화가 나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그 스스로 아벨을 쳐 죽이니라. 주께서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가 호소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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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천사의 존재는 당연히도 인간보다 먼저 있었다. 조물주를 도와 대지를 만들어 바다를 채우고 시간이 흐르게 하며 생명을 숨 쉬게 하는 수많은 일들에 천사들의 손길이 닿았다. 인간이 생겨난 뒤 많은 천사들은 하나씩 자신의 인간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름이라는 게 없던 김정수 역시 누군가를 수호하여야 했고, 그것이 카인이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로 그 카인 말이다. ‘인간을 사랑하라’는 조물주의 말처럼 그는 카인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가 바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 한없이 기도했음에도, 카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누구보다 많이 운 것 역시 그였다. 맡은 인간이 살인이라는 죄의 기원이 된다는 것은 더없는 상실감과 고통이었다.
ㅤ그때 미카엘이 그를 찾아왔다. 대천사가 이름도 없는 구품천사를 찾아오는 일은 드문 경우였으나 정신을 차리기에는 너무 지치고 슬픈 상태였다. 그는 겨우 일어나 예를 갖추듯 뒤늦게 허리를 숙였으나 눈은 너무 울어 탁해진 채 회색빛이 되었고 흰 깃털은 그 윤기를 잃은 채 바스락거렸다. 미카엘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ㅤ“무명 無名의 천사여, 나는 그대에게 죄를 내리러 왔으나 이미 고통받는 듯함에, 이유를 묻고자 한다.”
ㅤ“사랑하는 것이 비뚤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그런 일입니다.”
ㅤ갈라지는 그의 목소리에 미카엘은 입을 다물고 마주 허리를 숙여 그의 눈을 바라본다. 툭툭 바닥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눈물에 둘 모두 말이 없다가, 미카엘이 짐짓 중얼거리는 듯이 이야기한다.
ㅤ“네가 하는 사랑이 궁금하구나.”
ㅤ본디 모든 천사는 인간을 사랑하게 만들어져 있다지만, 그다지 깊은 죄를 지은 것마저도 사랑한다면 그것은 어떤 마음일까. 미카엘이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손을 적시는 짠 기에도 미카엘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그의 뺨을 보듬었다. 문득 머릿속에 드는 의문은 이렇다. 천사는 천사 역시 사랑할 수 있는가.
ㅤ정답은 원치 않을 정도로 금방 알 수 있었다. 천사도 천사를 사랑할 수 있었다. 만물을 사랑하게 만들어진 존재가 자신과 같은 존재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 아닌가. 미카엘은 이름도 없는 자신의 곁에서 아주 오래 머물렀다. 단순히 자신이 슬퍼한다는 이유였으나, 어쩌면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렇다. 카인이 조물주에게 표식을 받아 삶을 지속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안도하는 자신과 달리 표정이 굳어지는 미카엘의 얼굴에서 처음 보는 이상한 감정이 묻어났다.
ㅤ그건 지금의 사람들이 말하는 질투였을까. 카인이 아벨을 죽이게 만든 바로 그 감정 말이다. 그에 의해 또 고통받게 될지도 모르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나 걱정이었을 수도 있다고 자기 세뇌했지만 결국 카인이 미카엘의 손에 죽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조물주의 화가 누그러지지 못함을 마주했을 때. 이 무명 無名의 천사는 사랑이 죄라고 생각하게 되고 만 것이다. 세상에 공평한 사랑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누군가를 특별히 사랑하는 일은 재앙이다.
ㅤ그럼에도 나의 사랑하는 …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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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천사에게 날개란 가장 큰 힘의 원천이자 기억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미카엘이 날개를 잃고 윤회를 반복한다는 것은 더 이상 전생을 기억할 수 없다는 뜻인 동시에 무명 無名의 구품천사 따위는 완전히 잊었다는 뜻과 같았다. 그런데 왜 그 영혼을 잊지 못하고 사랑해서 스스로 지상에 머물기를 택하였나. 승민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안타까운 일이다.
ㅤ김정수는 수민의 수호천사였다. 천사는 같은 영혼을 계속해서 수호해야 하고, 그 말은 즉 수민이 가지고 있는 영혼은 카인의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수민에게서 미카엘의 영혼이 아들로 태어난 것은 어쩌면 조물주가 내리는 형벌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수민이 지석을 죽이고 싶어 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오래된 전생이라지만 흔적은 영혼에 남는다. 당신을 죽인 사람이 자신의 아이로 태어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김정수 역시 그 모든 것을 알고도 누구의 편도 선뜻 들 수 없었으니, 이것은 그에게도 뒤늦은 벌을 내린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옥상 난간에서 떨어지는 수민을 살리는 대신 지석의 손을 잡아채 안전하게 보호하는 순간, 그는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카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공고히 했고, 그것은 조물주의 노여움을 사기에 알맞았다. 그것이 무서워 김정수는 지석의 곁에 숨었고 동시에 날개를 내어주었을 것이다.
ㅤ그러니 승민의 일은 날개를 잃어 인간이 되고 만 김정수를 보호하는 것, 그리고 그의 날개를 도로 찾아내는 것, 그리고 나면 그를 천계로 돌려보내 재판장에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지석에게 날개가 있으리라는 것쯤이야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으나 어쨌거나 그는 미카엘의 영혼을 가진 몸으로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스스로 김정수의 앞에 날개를 가져오거나 그가 병들어 죽게 될 날을 아주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ㅤ천사들의 시간은 인간과는 비할 바 없이 길어 어림잡아 이십 년쯤이야 눈 깜짝할 새와 다르지 않았으므로 잠깐의 인간 노릇은 꽤나 재미있었다. 김정수는 천사가 아니더라도 너무 무르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사는 동안 그는 전부 잊은 주제에 꼭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사랑은 하지 않았다. 승민이 그 지긋지긋한 ‘사랑’을 알아버리는 동안도 그랬다.
ㅤ그래, 그래서 승민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동시에 정수에게도 시간을 주고 싶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승민은 이렇게 적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사랑이라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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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천사는 손이 잡힌 채, 느리게 지석을 끌어당겨 안는다. 자신의 거대한 날개 한 쌍이 그를 보이지 않도록 감싼다. 꼭 밖에서 보기에는 거대한 알을 품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날개를 애써 되돌려 받았음에도 너무 빠르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 돌아온 기억으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날개 따위 되돌려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기억을 모두 잃기를 감내하면서까지 그에게 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함께 영화를 찍고,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오래 사랑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윤기 잃은 깃털 사이로 다정한 바람이 불었다. 우는 얼굴의 천사가 조곤거리듯이 물었다.
ㅤ“지석아, 나를 왜 사랑해?”
ㅤ“네가 나를 구했으니까.”
ㅤ아니, 아니다. 천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나를 사랑한 건 그것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최초의 살인과 최초로 인간을 미워한 천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천사에게 너는 만족할 수 있는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울음처럼 말을 뱉었다.
ㅤ“네가 먼저 나를 사랑해서 그랬어.”
ㅤ예상했듯이 너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천사는 운다. 아니 웃는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천사가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그의 입술에 입술을 맞추면 가로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꺼졌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는 천사의 날개가 검은지 흰지를 분간할 수 없고, 멀리서 파랗게 여명이 들었다.
ㅤ“이제 갈 시간이야.”
ㅤ기다렸다는 듯이 등 뒤에서 승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를 한 번 더 꼭 안았다가 놓았다. 붙잡는 손길에도 없었던 존재인 것처럼 발끝부터 스르르 흩어지는 모양에 그의 커다란 눈동자에 절망이 비쳤다. 천사는 못내 생각한다. 그때, 지석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미카엘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니 내가 그 존재를 또다시 한없이 기다리는 속죄를 반복하는 게 옳았을까. 조물주가 지켜보고 있건대 적당한 이별과 적당한 사랑으로 우리는 서로를 끝내야 했을까. 그제야 깨닫는다. 아, 이 구원은 탈락했음이 틀림없다.
ㅤ안고 있던 지석을 손으로 밀어낸다. 그가 온갖 집의 잔해들 위로 정신을 잃고 까무룩 쓰러진다.
ㅤ▲
ㅤ녹음기는 소리도 없이 돌아간다. 의사는 내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끝까지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이 타자를 빠르게 쳐내려 가고 있었다. 타자 소리의 끝에 그는 안경을 한번 올려 쓰더니 물었다.
ㅤ“그럼, 본인이 그 ‘미카엘’이라는 생각은 언제 들었나요?”
ㅤ“그러니까 처음부터 저는 미카엘이었던 거라니까요.”
ㅤ“좋아요. 어쨌거나 본인도 몰랐잖아요. 언제 깨달았죠?”
ㅤ“그가 사라지고 나서 승민이 전부 말해줬어요.”
ㅤ“본인이 쓰러져있던 그 재개발 구역에서요?”
ㅤ“네.”
ㅤ“그럼 승민은 어디 있죠?”
ㅤ나는 고개를 돌려 의사의 곁에 서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승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ㅤ“여기요.”
ㅤ의사는 고개를 한번 슥 돌려 보더니 이내 타자 속도가 더 빨라진다. 그러게, 말하지 말라니까. 승민이 한숨 쉬듯 이야기한다. 나는 무표정하게 의사를 바라본다. 나의 말에는 한 톨의 거짓도 없었다. 의사가 전화로 간호사를 부른다. 곽지석 환자, 폐쇄병동으로 입원시켜 주세요.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고 승민을 보다가 중얼거린다.
ㅤ“정말 내가 미친 걸까?”
ㅤ“남들과 다른 건 미친 거라고 할 수도 있지.”
ㅤ승민의 대답에 못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나는 내가 미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진실이며 그와 나의 사랑 이야기를 어느 누군가는 알아주어야 한다. 그러니 지석은 병실에 앉아 희미한 기억으로 닿지 않을 편지를 쓴다.
ㅤ수신처는 온수동 6-26번지, 사랑하는 나의 천사에게.




